공지사항
제목
우예주를 만나다
작성자
인재육성과
등록일
2007-10-29
조회수
4,851
내용
이형택과 우예주. 스포츠와 음악에서 세계 정상을 두드리는 도출신 스타와 기대주다. 횡성에서 태어나 US오픈 16강에 2번이나 진출한 이형택.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키운 실력을 바탕으로 16세의 나이에 뉴욕 카네기홀에서 파가니니의 ‘무반주 바이올린 기상곡’을 세계 최연소로 연주한 우예주. 코트와 무대를 누비며 강원도의 힘을 온 세계에 떨치는 이들을 만났다.
우예주 “서른 살일 때도 변함없기를 소망해요”
2004년 6월2일 저녁, 뉴욕 카네기홀의 아이작스턴 홀. 2,800석을 모두 메운 청중들은 16세 어린 소녀가 세계 최연소로 연주한 파가니니 ‘무반주 바이올린 기상곡. 작품1(전 24곡)’ 완주를 듣고 흥분했다. 2시간의 공연이 끝났는데도 청중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열광의 갈채는 일곱 번의 커튼콜로 이어졌다.
엘리자베스 우(Elizabeth Woo·한국명:우예주)의 공연이었다. 객석에 앉아 이 공연을 지켜 본 고수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씨도 감격했다. 무대뒤 대기실로 찾아 온 정씨가 그랬다. “너는 밥먹고 바이올린 연습만 했구나.”
알버트 마르코프 맨해튼음대교수 연주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사적으로 파가니니 무반주 바이올린 기상곡을 완주한 사람은 5∼6명, 더구나 16세 나이로는 엘리자베스 우가 처음이다.” 이 연주회의 호평으로 엘리자베스 우는 유엔의 초청으로 유니세프 모임(뉴욕 유엔본부)에서 연주했다. 그 자리에서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은 “유엔과 관계를 지속하자”고 제의했다.
우예주의 카네기홀 연주회는 국내에서도 큰 뉴스였다. 모 방송 저녁 메인뉴스에 ‘뉴욕이 놀랐다’는 제목으로 보도됐고 신문들마다 대서특필했다. 한 신문 칼럼에 이런 귀절이 들어있다. “미국에 가서 고관들과 사진찍기에 바쁜 우리나라 국회의원 100명보다 이 소녀(우예주) 한 명이 떨친 국위선양 효과가 훨씬 큽니다.” 한국예술평론가협회는 그 해 국제신인상을 수여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우예주(19)는 춘천출신. 아버지 우종춘(강원대 산림경영학과교수)박사의 유학으로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40일에 한국에 들어와 춘천에서 성장했고, 부안초교 재학중이던 9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음대 예비학교를 다녔다. 2년 후인 11세 때 불가리아 소피아에서에 어렵기로 소문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소피아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이 연주 실황이 이듬해 그녀의 첫 음반(한국 ,묵사운드)으로 제작돼 나올 만큼 성공적이었다.
맨해튼음대 예비학교를 1년 조기졸업한 그녀는 당연히 맨해튼음대에 진학했다. 지금은 휴학중. 세계 각국에서 연 20여회씩 연주회가 잡혀, 이를 소화하느라 학교생활을 잠시 접었다. 그래서 고민이다. 어차피 전문연주자로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지금의 생활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나이에 비해 훨씬 더 성장한 바이올린 연주실력이 그녀를 세상이 가만 놓아 둘 리 없다. 이미 뉴욕에 있는 유명 아티스트 전문매니지먼트사 ‘파커 아티스트’에 소속돼 있다. 국내에서는 후원회(회장:신동헌만화가)와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일하는 음악평론가 김진묵씨가 뒷일을 봐주고 있다.
이태리 프랑스 독일 스페인 불가리아 등 세계 10여개 국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지난 3월에는 뉴욕 링컨센터에서 론도챔버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올해 제정된 세계 한인의 날(10월5일)을 맞아 재외동포재단이 클래식연주분야 대표로 초청받았다. 그래서 서울 대학로 특설무대 KBS국악관현악단 협연을 위해 귀국, 고향(춘천)을 다녀갔다.
우예주의 다음 연주회는 11월27일 홍콩 시티홀 독주회. 우양은 “홍콩연주회 때는 후원회장인 만화가 신동헌화백의 전시회도 함께 마련된다”고 반가워했다. 12월14일에는 서울 KBS홀에서 열리는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 무대에 서게돼 있다.
2월 뉴욕 멀킨홀에서 우륵챔버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시작되는 내년 연주 일정도 빡빡하다. 그중 벌써부터 가슴 뛰게 하는 연주회가 있다. 평양공연이다.
1주일간 머물며 북한 작곡가의 곡을 평양오케스트라와 3∼4회 협연하게 돼 있다. 그리고 나서는 곧바로 제주도로 날아가 공연하게 돼 있다. 숨돌릴 틈이 없는 연주일정이다.
우양은 매년 국내연주회를 한두차례 마련한다. 그래야 부모님이 있는 고향(춘천)을 다녀갈 수 있기 때문이다. 3살 때 그녀를 음악의 길로 인도해준 어머니 문성이씨는 9살 때부터 이국에서 혼자 생활한 딸이 한국말을 잊지 않고 잘하는 게 대견스럽다. 그래도 “연주자로서의 생활을 즐겁게 하고, 인성적으로도 깊어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그녀가 귀국해 집에 오면 늘 이렇게 말한다 “어려서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잊고 미국식 생활을하는 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라고.
“크라이슬러, 샤프란, 하이팻츠, 아이작스턴 등 개성파 연주자들을 좋아한다”고 밝힌 그녀의 소망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 그래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본다.
자신의 내면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서다.
용호선기자 yonghs@kwnews.co.kr
우예주 “서른 살일 때도 변함없기를 소망해요”
2004년 6월2일 저녁, 뉴욕 카네기홀의 아이작스턴 홀. 2,800석을 모두 메운 청중들은 16세 어린 소녀가 세계 최연소로 연주한 파가니니 ‘무반주 바이올린 기상곡. 작품1(전 24곡)’ 완주를 듣고 흥분했다. 2시간의 공연이 끝났는데도 청중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열광의 갈채는 일곱 번의 커튼콜로 이어졌다.
엘리자베스 우(Elizabeth Woo·한국명:우예주)의 공연이었다. 객석에 앉아 이 공연을 지켜 본 고수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씨도 감격했다. 무대뒤 대기실로 찾아 온 정씨가 그랬다. “너는 밥먹고 바이올린 연습만 했구나.”
알버트 마르코프 맨해튼음대교수 연주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사적으로 파가니니 무반주 바이올린 기상곡을 완주한 사람은 5∼6명, 더구나 16세 나이로는 엘리자베스 우가 처음이다.” 이 연주회의 호평으로 엘리자베스 우는 유엔의 초청으로 유니세프 모임(뉴욕 유엔본부)에서 연주했다. 그 자리에서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은 “유엔과 관계를 지속하자”고 제의했다.
우예주의 카네기홀 연주회는 국내에서도 큰 뉴스였다. 모 방송 저녁 메인뉴스에 ‘뉴욕이 놀랐다’는 제목으로 보도됐고 신문들마다 대서특필했다. 한 신문 칼럼에 이런 귀절이 들어있다. “미국에 가서 고관들과 사진찍기에 바쁜 우리나라 국회의원 100명보다 이 소녀(우예주) 한 명이 떨친 국위선양 효과가 훨씬 큽니다.” 한국예술평론가협회는 그 해 국제신인상을 수여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우예주(19)는 춘천출신. 아버지 우종춘(강원대 산림경영학과교수)박사의 유학으로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40일에 한국에 들어와 춘천에서 성장했고, 부안초교 재학중이던 9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음대 예비학교를 다녔다. 2년 후인 11세 때 불가리아 소피아에서에 어렵기로 소문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소피아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이 연주 실황이 이듬해 그녀의 첫 음반(한국 ,묵사운드)으로 제작돼 나올 만큼 성공적이었다.
맨해튼음대 예비학교를 1년 조기졸업한 그녀는 당연히 맨해튼음대에 진학했다. 지금은 휴학중. 세계 각국에서 연 20여회씩 연주회가 잡혀, 이를 소화하느라 학교생활을 잠시 접었다. 그래서 고민이다. 어차피 전문연주자로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지금의 생활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나이에 비해 훨씬 더 성장한 바이올린 연주실력이 그녀를 세상이 가만 놓아 둘 리 없다. 이미 뉴욕에 있는 유명 아티스트 전문매니지먼트사 ‘파커 아티스트’에 소속돼 있다. 국내에서는 후원회(회장:신동헌만화가)와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일하는 음악평론가 김진묵씨가 뒷일을 봐주고 있다.
이태리 프랑스 독일 스페인 불가리아 등 세계 10여개 국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지난 3월에는 뉴욕 링컨센터에서 론도챔버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올해 제정된 세계 한인의 날(10월5일)을 맞아 재외동포재단이 클래식연주분야 대표로 초청받았다. 그래서 서울 대학로 특설무대 KBS국악관현악단 협연을 위해 귀국, 고향(춘천)을 다녀갔다.
우예주의 다음 연주회는 11월27일 홍콩 시티홀 독주회. 우양은 “홍콩연주회 때는 후원회장인 만화가 신동헌화백의 전시회도 함께 마련된다”고 반가워했다. 12월14일에는 서울 KBS홀에서 열리는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 무대에 서게돼 있다.
2월 뉴욕 멀킨홀에서 우륵챔버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시작되는 내년 연주 일정도 빡빡하다. 그중 벌써부터 가슴 뛰게 하는 연주회가 있다. 평양공연이다.
1주일간 머물며 북한 작곡가의 곡을 평양오케스트라와 3∼4회 협연하게 돼 있다. 그리고 나서는 곧바로 제주도로 날아가 공연하게 돼 있다. 숨돌릴 틈이 없는 연주일정이다.
우양은 매년 국내연주회를 한두차례 마련한다. 그래야 부모님이 있는 고향(춘천)을 다녀갈 수 있기 때문이다. 3살 때 그녀를 음악의 길로 인도해준 어머니 문성이씨는 9살 때부터 이국에서 혼자 생활한 딸이 한국말을 잊지 않고 잘하는 게 대견스럽다. 그래도 “연주자로서의 생활을 즐겁게 하고, 인성적으로도 깊어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그녀가 귀국해 집에 오면 늘 이렇게 말한다 “어려서 미국으로 가서 한국을 잊고 미국식 생활을하는 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라고.
“크라이슬러, 샤프란, 하이팻츠, 아이작스턴 등 개성파 연주자들을 좋아한다”고 밝힌 그녀의 소망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 그래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본다.
자신의 내면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서다.
용호선기자 yonghs@kwnews.co.kr